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줄이야
두 달 전 즈음 해외출장을 다녀왔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을 느끼며 짐을 찾고 공항버스에 올랐다. 이후 가족에게 귀국사실을 알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신호음이 '따르릉~'하고 들려야 하는데 따르릉이 아닌 한음 낮은 '뚜르릉~' 소리로 들렸다.
"이상하다 혹시 아직 핸드폰이 로밍이 적용되어서 해외로 인식되어서 소리가 다른 건가?" 하는 생각... 지나 보니 무식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만, 왼쪽 귀가 계속 비행기 탈 때 고도가 높아지면 느껴지는 귀속에 꽉 찬 증상과 물속에 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이명이 발생되고 있었지만, 이 또한 비행기에서 막 내려서 아직 몸이 적응이 안 되었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참고로 나는 습관적으로 통화 시 왼쪽손을 사용, 왼쪽귀로 대부분 통화를 한다.
이후 계속 귀가 잘 안들리고 이명으로 두통까지 발생되고 있어서 병원에 가야지 가야지 하고 생각을 계속하였었지만, 출장보고서 작성과 회사 일이 많아 주말에도 일하는 일정이 지속되었었다.
하필이면...
발병 3주 만에 병원에 가다.
귀 상태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함이 더해지고 사람들 목소리까지 잘 안 들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왼손에 물건을 들고 있어서 오른손으로 오른쪽 귀에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오른쪽 귀는 전화기 신호음이 정상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왼쪽귀로 다시 들어봤는데... 소리가 다름을 그제야 느꼈다.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끊이지 않는 회사의 업무들로 그 주 토요일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발병 약 3주만 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시경 같은 것으로 귀를 들여다보았지만 정상이라며 청력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검사결과 돌발성난청 진달을 해주었다. '해당 병은 귀 측면에서는 응급상황인데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며, 병의 심각성을 이야기해 주었다.
'돌발성 난청은 치료가 어려우며, 그러하기에 발병 후 즉시 병원을 찾아 약물 치료와 필요시 고막에 스테로이드제를 직접 투여하는 방안 등의 대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1주일 내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3주가 지나서 걱정이라며, 프린트 물을 한장 건네어주셨다.
그 중 눈에 가장 들어온 글귀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 보통 2주 안에는 회복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적으로 1/3의 환자는 정상 청력을 되찾고, 1/3은 손실 당시와 비슷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1/3은 청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습니다." 순간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해당 병에 유일한 치료제는 스테로이드뿐이라며, 고농축 스테로이드 처방을 내릴 테니 먹어보면서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많으니 수요일 즈음 병원에 다시 내원해 달라고 하였다. 더불어 짠거 매운거 피하고, 술은 절대 먹지 말라는 충고와 푹 쉬는 게 중요하다며 많이 자라고 하셨다.
이에 나의 대답은 회사 일이 바빠서 주말에나 내원이 가능하다는 답변 '... 지나고 보니 정말 나 자신에게 미안한 답변이었던 것 같다.' 이에 의사 선생님은 그럼 일주일치 스테로이드를 처방하겠다고 하시며, 그래도 푹 쉬셔야 한다고 재차 강조를 해주셨다.
돌발성 난청이란?
돌발성 난청은 순음청력검사에서 3개 이상의 연속된 주파수에서 30dB 이상의 청력손실이 3일 내에 발생한 감각신경성 난청이며, 때로 귀에서 소리가 나거나(이명), 귀가 꽉 찬 느낌(이충만감), 현기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대부분 한쪽 귀에 발생하고 30~50대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한국에서도 연간 10만 명당 10명 이상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원인불명의 돌발성 난청에 쓰이는 치료제 중 유일하게 효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스테로이드로, 그 외 혈액순환 개선제, 혈관 확장제, 항바이러스제, 이뇨제, triiodobenzoic acid 유도체를 사용되기도 한다(대개 입원한 경우는 정맥주사하고, 외래에서는 경구 복용한다). 추정되는 원인이나 증상에 따라서 고막 안쪽에 스테로이드를 직접 주사하거나 수술적 요법 등으로 치료한다. 이 모든 치료는 입원하여 절대 안정을 원칙으로 하며, 치료와 함께 청력 검사를 통해서 치료 경과를 관찰하여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을 찾아가다.
주말에 잠이 오질 않았다. 회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상사가 원망스럽고...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이러다가 정말 한쪽귀가 안 들리며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 으로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불안감에 모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여러 큰 병원에 전화를 걸어 가장 빨리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그중 '삼성서울병원'이 그 주 금요일 진료가 가능하다며, 첫 방문 시에는 상급병원 진료 의뢰서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수요일 저녁 회사에 이야기하고 일찍 나와서 동네 병원을 찾아 다시 청력 검사를 하고 상급병원 의뢰서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청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안 좋다며 편안하게 생각하고 많이 주무시라는 말씀을 다시 주셨다.
집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성당에 들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나 자신에게 미안해서, 스스로에게 채찍질만 했던 나, 그리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내 자신에게 미안해서 많이 울었었다.
그 주 금요일 상섬서울병원을 찾았다.
역시나 돌발성 난청이라며 시점이 많이 늦었다는 말씀을 주셨다. 그러면서 스테로이드제는 한 번에 끊을 수 없다며 다음 한 주간은 스테로이드제를 줄이는 처방과 2주 정도 스테로이드제를 지속 먹으면 위가 상할 수도 있다며 위장약, 그리고 이후 한 달간 복용할 혈액순환 개선제와 혈관 확장제를 먹으며 지켜보자는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보자고 말씀하셨다.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을 찾아가다.
이후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려고 노력했다. 늦어도 집에는 8시에 도착했고, 씻고 식사하고 바로 잠을 청했다. 약기운 때문인지 정말 쓰러지듯이 잠들었었다.
그래도 귀가 좋아지지 않았다. 사람들 목소리도 잘 안 들리고, 먹먹한 느낌과 지속되는 이명.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리라는 마음과 나 스스로를 돌봐야 하겠다는 생각에 많이 자고, 좋은 생각 하며, 출퇴근 시간에는 클래식 음악을 작게 틀어서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던 중 한방 치료를 병행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토요일에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에 찾아갔다.
한방병원에도 이비인후과가 별도로 있는걸 처음 알았다. 다만, 토요일에는 격주 진료만 보는지라 내가 찾은 토요일에는 진료를 보지 않아 침구과에서 침을 맞고 한약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정말 많이 잤다. 깨어있을 때 과일을 의식적으로 많이 먹고, 아침저녁으로 양약을 먹기에 한약 처방받은 것은 점심에 먹으면서...
드디어 왼쪽귀로 신호음이 정상적으로 들리다!
발병 7주 차, 병원 진료 시작한 지 4주 차에 들어섰다.
계속되는 이명과 먹먹함, 왼쪽 오른쪽 귀에 들리는 소리의 발란스가 맞지 않아 많이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내색하면 가족이 많이 슬퍼했기에...
그러던중 7주 차 수요일 아침, 평소와 다른 기분을 느꼈다. 이명은 계속되었지만, 먹먹함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오전 출근해서 업무를 보다가 테스트 차원에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왼쪽 오른쪽 귀의 들리는 소리를 비교해 보았다.
그런데... 왼쪽 귀의 통화음이 오른쪽 귀와 큰 차이가 없음을 느꼈다.
사실인가 싶어 여러 번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도 동일했다.
그날 좀 일찍 퇴근을 해서 동네 병원을 찾아가서 현 상황을 말씀드리고 청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손에 땀이 났다. 그리고 정말 집중해서 소리를 들어 보았다. '삐~ 삐~~~' 수능 영어 듣기 평가를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많은 긴장 속에서 진행한 테스트...
이후 선생님 말씀이 '정말 축하드린다며, 저음 음역대가 정상으로 회복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다.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과 함께.
다만, 아직 고음 영역대는 회복이 안되고 있다고 하셨다. 이 부분은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이며 그래도 저음이 회복되었으니 일상생활하데는 한결 편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명이 계속되는 것은 후유증으로 보이며 큰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지속해서 복용하며 편히 쉬면서 지켜보자는 말씀을 주었다.
그리고 주의할점은, 이후에도 반복될 수 있기에 앞으로 관리가 중요하다고는 충고를 해 주셨다. 지속 반복되면 '메니에르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씀과 이후에는 증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셨다.
메니에르병 이란?
메니에르병은 발작성으로 나타나는 회전감 있는 어지럼증과 청력 저하, 이명(귀울림), 이충만감(귀가 꽉 찬 느낌) 등의 증상이 동시에 발현되는 질병으로, 1861년에 프랑스 의사 메니에르(Meniere)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다. 아직까지 병리와 생리 기전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내림프 수종(endolymphatic hydrops)이 주된 병리현상으로 생각되고 있다. 메니에르병은 급성 현기증을 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내이 질환이다.
고맙다 내 몸아. 미안하다 내 몸아.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너무 기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맙다 내 몸아, 고맙다 내 귀야, 고맙다 내 자신아...."
아직 이명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리도 전화 신호음이 정상적으로 들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다음 주면 삼성서울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다. 남은 기간 편안히 생각하며 지내면 좀 더 좋을 결과를 받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이제는 내 몸이 들려주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다.
그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별건 아니지만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 이용하기, 회사에서 앉아 있을 때 1시간 단위로 타이머 맞추고 잠깐 일어나서 물 한잔 마시고 오기 등등
돌발성 난청, 그리고 메니에르병은 재발이 잦은 병이라고 하기에, 그리고 병을 떠나 나 자신에게 다시는 미안해하고 싶지는 않다.
돌발성 난청의 불편함은 정말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하기에 이 글을 읽고 나와 동일한 병으로 고생하시는 분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발병 3주가 지나고, 치료 7주 만에도 회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기를 바라며, 그리고 나에게도 남은 이명과 아직은 잘 들리지 않은 고음 영역대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기대감 그리고 희망으로 경험담을 적어 보았다.
아프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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